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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 ‘야생동물 고속도로’ 프로젝트 소개

by tidmi 2025. 4. 26.

도시 속 ‘야생동물 고속도로’ 프로젝트 소개
도시 속 ‘야생동물 고속도로’ 프로젝트 소개

오늘은 생물 이동 경로를 위한 인프라 이야기 (ex. 고가 생태다리, 생태터널)에 대해서 소개해 보려 합니다.

왜 야생동물에게도 '길'이 필요할까?

인간이 만든 도로, 철도, 아파트 단지, 산업시설은 도시를 더욱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야생동물에게는 거대한 장벽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전처럼 숲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고, 종종 고립되어 번식이나 먹이활동에 제약을 받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도로를 건너다 차량에 치이는 '로드킬'로 생명을 잃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개체 수 감소를 넘어 생태계 균형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야생동물에게 ‘길’이란 단순히 이동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조건이자,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 고립된 개체군은 근친교배로 인해 유전적 질병에 취약해지며, 이는 종 전체의 생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생태 연결성(Ecological Connectivity)’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이 개념을 바탕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야생동물 고속도로’입니다.

이 고속도로는 인간의 길이 아닌, 동물들을 위한 이동 통로입니다. 숲과 숲, 산과 강 사이를 이어주는 생태 다리, 생태 터널, 생태 복원 구역 등을 통해 단절된 환경을 다시 연결해 주는 장치인 셈입니다. 이처럼 야생동물에게 길을 만들어주는 일은, 단지 동물보호에 그치지 않고 결국 우리 삶의 터전인 생태계 전체를 지키는 일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국내외 생태 통로의 다양한 사례들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야생동물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로는 네덜란드의 '에코덕트(Ecoduct)'가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전국에 약 600여 개에 달하는 생태다리를 설치했으며, 특히 ‘빈더호헤르스트’ 생태다리는 너비만 50m에 달해 사슴, 여우, 고슴도치까지 다양한 동물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심지어 이 지역에서는 생태다리를 CCTV로 모니터링하며 실제로 어떤 동물들이 어떻게 다니는 지도 데이터화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밴프 국립공원도 주목할 만한 사례입니다. 이곳에는 도로 위를 지나는 생태교량 외에도, 고속도로 아래로는 수십 개의 생태터널이 구축되어 있으며, 곰, 쿠거, 엘크 등 대형 동물들의 주요 이동 통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인프라 덕분에 로드킬 발생률이 무려 80% 이상 감소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부 주도로 ‘생태통로 설치 사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강원도나 경기도 외곽 고속도로 주변에는 산악 지형의 단절을 해소하기 위해 수십 곳의 생태통로가 조성됐습니다. 서울시 역시 서울대공원과 청계산 사이에 생태다리를 설치해 멧돼지나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이 도심 인근에서 보다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대중에게 낯설지만, 이러한 생태 인프라는 단순한 동물 보호의 차원을 넘어 도시와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필수 장치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사는 도시를 위한 첫걸음

야생동물 고속도로는 단순히 인프라를 설치한다고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이는 도시 계획, 환경보호, 시민 인식 변화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만 실현 가능한 종합적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인간 중심의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중심의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생태통로를 설계할 때는 단순히 육교나 터널 하나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을 오가는 주요 야생동물의 종류, 이동 시기, 이동 습관 등을 분석한 생태적 데이터가 반드시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 공간을 오랫동안 유지·관리하려면 행정적 예산과 시민 참여가 병행되어야 하죠. 실제로 몇몇 생태다리는 초기에 설치된 후 유지보수가 되지 않아 폐쇄되거나 활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불어 시민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보호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도시에서 동물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긴다면, 공존은 불가능합니다. 멧돼지가 도심에 나타나면 무조건 포획 대상이 되곤 하지만, 그것이 왜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고 도시 외곽에 동물들의 이동통로를 만들어주는 일은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는 접근이 될 수 있습니다.

야생동물 고속도로는 결국 ‘함께 살기 위한 약속’입니다. 인간이 자연을 점유한 만큼, 그 생명을 위한 공간을 되돌려주는 건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도시가 생명을 배려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 도시는 더 지속 가능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