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도시와 도로는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야생동물에게는 생존의 길을 막는 커다란 장벽이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야생동물 고속도로'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과 도시를 다시 연결하는 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생생한 사례들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네덜란드: 생태교량의 나라, 자연과 인간을 잇다
네덜란드는 평지가 많은 지형 특성상 도로망이 매우 촘촘히 발달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숲과 숲이 단절되고, 야생동물들의 이동이 크게 제한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199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에코덕트(Ecoduct)'라는 생태교량을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빈더호헤르스트(Vianderhorst) 생태다리입니다. 이 다리는 너비가 50m에 달하며, 사슴, 여우, 고슴도치 등 다양한 동물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다리 위에는 나무, 덤불, 풀을 심어 마치 숲의 일부처럼 꾸며져 있어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경계심 없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에는 현재 약 600개 이상의 생태 통로가 설치되어 있으며, 생태다리뿐만 아니라 도로 아래를 통과하는 생태터널도 활발히 운영 중입니다. 특히 이들 생태시설은 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고, 어떤 동물들이 이동하는지 데이터로 축적되어 이후 정책 개선에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가 보여주는 이 사례는 단순히 '만들어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와 데이터 기반의 생태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야생동물과 인간이 함께 도시 공간을 공유하는 모델로 세계 여러 나라에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캐나다: 밴프 국립공원의 생명선을 지키다
캐나다의 로키 산맥에 위치한 밴프 국립공원(Banff National Park)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하지만, 한때는 야생동물과 자동차의 충돌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고속도로(트랜스캐나다 하이웨이)가 국립공원을 관통하면서 곰, 쿠거, 엘크 같은 대형 동물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었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6년부터 캐나다 정부는 야생동물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지금까지 밴프 국립공원 내에는 총 44개의 생태통로가 설치되었습니다. 그 중 6개는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생태교량, 38개는 도로 아래를 통과하는 생태터널입니다.
특히, 밴프 생태교량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통로를 통해 곰, 늑대, 사슴, 퓨마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도로를 안전하게 건너는 모습이 수천 건 이상 기록되었습니다.
이 덕분에 로드킬 사고는 80% 이상 감소했고, 동물들의 서식지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밴프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순히 '시설'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개선하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기에는 일부 동물들이 생태다리를 꺼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리 위에 나무와 덤불을 심고, 주변 환경을 더 자연스럽게 조성하면서 점차 이용률이 높아졌습니다.
이처럼 캐나다는 생태통로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조심스럽게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낸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 이제 막 걸음을 뗀 도시 생태 연결망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야생동물 고속도로'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로드킬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생태통로 설치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수원 광교산 생태통로입니다.
광교산 일대는 산책로와 도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야생동물 이동에 큰 장애가 되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로를 가로지르는 생태교량을 설치했습니다.
덕분에 멧돼지, 너구리, 고라니 같은 동물들이 보다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죠.
또 다른 주목할 사례는 강원도 춘천 지역입니다.
이곳은 특히 고속도로 주변으로 산림이 많이 단절되어 있었는데, 복수의 생태통로가 설치되면서 로드킬 발생 건수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서울시도 청계산과 서울대공원 사이에 생태다리를 설치해 도심과 가까운 지역에서도 야생동물의 이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생태통로 프로젝트는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설치 수나 관리 예산 면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고, 시민 인식 역시 아직 충분히 확산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설치 이후 제대로 유지·관리되지 않아 통로가 방치되거나 활용률이 낮은 사례도 있어 아쉬움을 남깁니다.
앞으로 한국도 생태통로 설치와 함께,
동물 행동 패턴 분석,
장기적 모니터링,
지역 주민과의 협력
같은 통합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제 막 걸음을 뗀 한국의 '야생동물 고속도로' 프로젝트.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이어진다면, 도시와 자연이 다시 연결되는 따뜻한 길이 곳곳에 생겨날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벽을, 다시 생명의 길로 되돌리는 일.
야생동물 고속도로는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야 할 새로운 시작입니다."